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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나를 조금 더 알게 된 한 해회고 2025. 12. 10. 23:34
들어가며
Coldplay - Fix You 
8년째 매년 회고를 쓰고 있지만, 올해만큼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인상 깊었던 일이 크게 없었고, 있었다 해도 내 삶에서 새롭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025년을 돌아보니 크게 두 가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1) 상장 당일, 1평 남짓한 SafeRoom 공간에서 코인 전송을 대기했던 순간, 그리고 상장 하던 그날이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던 나의 모습.
2) 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며 "저는 어떤 것을 잘하는 사람인가요?"라고 되묻던 나의 모습
약 3년 6개월 동안 애써 만든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왔을 때,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처음 든 감정은 '긴장'이었던 것 같다.
큰 프로젝트에서 보면 작은 부분일지 몰라도, 내가 주체적으로 설계한 부분들이 있었기에 '시장의 평가'가 긴장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감정은 자책으로 변해갔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했었어야 했는데, 그저 열심히만 했었던 것 같고
이전에 느꼈던 여러 성취감과 자아실현의 순간들이 어리숙한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여름이 왔고, 그 시점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컸다.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피드백을 들었고, 그 말들이 다시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아주었던 것 같다.
2025년 회고를 쓰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 그리고 과거 회고들이 조금은 "패션 회고"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올해가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것
매년, 자기소개가 달라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면접을 보는 상상을 할 때, 작년까지만 해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점점 현재 조직에 맞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괴상한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되었고, 약 4년전 부터 시작 된, 이 고민은 해소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블록체인'의 특수성으로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사실 조금 '희생'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피드백을 받고 나서 '그냥 하는 거지'라기보다, 매년 나의 분야가 바뀔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잘 습득하고 활용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분야든 블록체인으로 힘들어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내가 그쪽 분야를 이해하면 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제너럴리스트', '스페셜리스트'라는 말을 썼는데, 아마 지금의 나는 정말 제너럴리스트로 변해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년에 나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는 순간들이 있을 텐데, 그때마다 지금을 기억하길 바란다.
개방성과 학습력을 기반으로 통섭적 사고를 하자.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NEXPACE에서 Head of Blockchain Development로 개발의 우선순위와 리스크를 관리하고, 회계/감사와 같은 외부 규제 환경에 대하여 파악하고, 대응하는 업무를 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리스크 매니저가 저를 소개하는데,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이 세상에는 가치 없는 일은 없다'고 확신한다.
매니징을 하게 된 지도 오래되었지만, 나는 항상 일감 분배에 약점이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자기개발이 되지 않는 업무라면 부여할 때 찜찜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회계/감사 관련 업무도 '아, 그냥 내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프로세스 구축, 감사인 소통 외에 약 116개의 절차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막연하게는 알고 있었다.
어떤 업무든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고, 뒤돌아봤을 때에는 자신에게 큰 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예시가 없어 올해 이 예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고생한 만큼 모든 것을 특허로 만들지 못해 서글픈 마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여러 절차 중 한 가지 절차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고, 또 이런 업무를 진행하며 '리스크 매니징'이라는 직군과 역할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당연히 좋은 업무니까 배울 게 있고, 무언가를 남길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초기 SafeRoom과 통제는 그렇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즉, 어떤 업무든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어떤 업무든 마음 편히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희망보다는 불안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포착되면 감정이 나빠진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싶지 않아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은 모두가 인지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감정 기복이 심해 티가 잘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점을 인지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던 것 같고, 책도 읽어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으려고 마음속으로 주문도 외워봤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항상 인자한 어른들을 보며 동경하지만, 아직은 도달할 자신도, 방법도 모르는, 조금 오래 가지고 가야 할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희망'과 '불안'은 모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반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희망'을 기반으로 불확실성을 이겨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더 쉽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어떤 상황에든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원동력으로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벗어나기 힘든 일상적인 루틴에서도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내가 '불안'을 느낀다는 것에 스트레스받기보다 당연한 과정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고,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내년에 다시금 불안을 느낄 때 지금 나의 생각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회복 속도가 아쉬웠던 한 해였다.
라이브 약 2개월 이후,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존재 가치가 희미해졌다고 생각했고,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불안이 몰려왔고,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지니 시야가 좁아졌고, 분명 약 1~2개월의 시간은 나의 가치만큼의 업무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아, 계획을 다시 세워보자'라고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소모되었는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잠시 침착해졌다면 사실을 인지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한 번 더 온다면, 정비하는 시간을 조금 더 빨리 갖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의 강도와 시간을 무기로 쓰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올해에도 초과근무를 꽉 채웠네, 난 이렇게 바쁜 사람이구나'를 자존감 향상과 협상의 무기로 썼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사고를 완전히 지웠다고 생각한다. 바빠서 힘들었지만, 그것이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마 이 '인지'는 앞으로 스스로의 평가 기준이 조금 더 어려워질 수 있겠지만, 분명 더 멋지게 변화시켜줄 포인트라고 기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2025년 잘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강점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들은 시장에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주체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2022년부터 기록했던 회고들이 그저 스스로의 성장만 생각한 '유쾌한 척'하는 어리석은 회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늦지 않게 이런 감정들을 느낀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내년에도 '불안'을 느끼며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평생 반복될 고민을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 지금의 기록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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