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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T] 밑바닥에서부터
    회고 2020. 1. 9. 17:13
    넥슨의 자회사 BEL(블록체인엔터테이먼트랩)에 합격했다. 대기업의 자회사일 뿐이지만 게임학을 전공한 내게 넥슨은 보다 큰 의미가 있고, 게임, 블록체인, 웹, 앱 경험 모두를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2019년 창업한 회사에서 퇴사하게 되고, 약 한달 조금 안되는 시간. 처음으로 내 삶에서 취업준비를 했다.

    28살에 약 3년 6개월의 경력과 3개의 회사를 거쳐왔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욕심이 없었던 것인지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누군가 먼저 불러주는 회사`에서 `회사의 비전`, `꿈`과 관계 없이 일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삶 속에서 `수동적`으로만 산 것은 아니다. 첫 회사에서는 정해진 연봉 테이블에 부당함을 느끼고, 나의 1년의 활동을 정리하여 연봉협상에 들어가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연출을 위하여 카메라 기법을 공부할 시간을 팀원들에게 요청도 해보았고, `네이버 지식인`에 번역을 요청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엔진 본사에 메일도 써보았다. 그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사원`이 이런일을 하는 것이 조금은 특별했었다. 그래서 농담식으로 `싸가지 없는 사원`, `사대(사원대표)`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회사의 많은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찾으려는 시도가 시작 된 지점인 것 같다.

     

    입사한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우수사원이 될 수 있었다.

    밑바닥인지 관심조차 없던 나의 10대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대학교 이전까지 삶을 보냈다. 우리 동네에는 신기한 공식이 있었는데. 중간만 가도 `인서울` 대학교에 진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였다. 한 번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20대를 보내야 할까?`를 고민 한적 없다. 화학이 싫어 문과를 선택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내겐 AION이라는 게임에서 천족을 학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난 수능 전날 까지 게임의 출석 이벤트를 했고, 수능을 보게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와 우리집에서 가채점을 했다. 항상 포기했던 영어 빈칸 문제 약 6개를 전부 1번으로 찍었는데. 5개가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서울은 커녕 지방대를 선택해야겠지만 이미 예상했었던 결과였지만 난 `찍은 문제가 맞았다.`에 마냥 기분이 좋아, 어머니에게 흥분해서 말했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내 친구는 재수를 해야된다며 우리 집 벽을 쳤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내 인생을 걱정하셨다.넌 무조건 삼수라고.

    `문과`출신인 나는 `사회복지학과`를 생각했다. 착한 아이인지. 착한척을 좋아하는 아이인지 그 때도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재밌고 뿌듯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조언과 노력으로 여러대학 `컴퓨터공학`에 지원하고, 운이 좋게 호서대학교 게임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개발자? 기획자?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메이플 GM(운영자)이 되어 유저들에게 환호를 받을 생각에 무작정 행복했다. 부모님도 생각 없는 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관련 학과를 간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셨다.

     

    호서대학교

     대학교 입학 후에도 나의 `나대는 성격`은 여전 했다. 하지만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며 나의 인생에 대하여 고민과 걱정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는 항상 친구들에게 숙제를 물어보고, 숙제를 베끼는 역할은 나의 역할이였는데. 호서대학교에서는 모두 나에게 물어보고, 나의 과제를 요구했다. 그래서 1학년 2학기 부터는 SNS를 Offline으로 만들고, 방에 불을 끄고 은둔 생활을 했다. 이 시간 동안 처음으로 `내 삶이 잘 못 되었다.`를 느끼게 되었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갑작스레 학회 활동을 하게 되었고 결국 게임학과 학회장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날 억지로 시키려는 선배가 싫었고,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환경`이 한탄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사람과 어울리고, 책임감이 상상이상으로 향상 되었던 시기 같다.

     

    나는 성장 했지만, 미숙했던 나의 행동들에 미안한 15학번 신입생들

     

    밑바닥에서

     결론은 난 대학생까지 확고한 `가치관`과 `꿈`이 없었다. 대학생 때는 단순히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느끼고, 사회를 나오면서 진심을 다해 몸부림 쳤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인서울이든, 지방대이든 머리에 대한 사양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차이라고 하면 `가치관`과 `꿈`에 대하여 10대 때,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는가?인데. 문제는 이것을 느끼는 것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따라가기가 벅차다는 것 정도이다. 나 또한, 깨달은 시점이 늦었다. 아직도 밑바닥이지만, 어찌되었든 약 2년 동안 몸부림을 쳤고 그 몸부림 덕에 바닥에서 발이 떨어졌다.

     아직 더 많이 노력해야한다. 10대, 20대에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이 고작 2년이라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면 이것은 얼마나 불합리한가. 하지만, 누구보다 더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력이 고통스럽기 보다, 행복할 것 같다.

     

    어릴적 막연하게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서 채용 메일이 나의 그 동안의 `조금씩`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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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er RyuK